완닝챠오 万宁桥

만녕교(万宁桥)는 베이징 지안문(地安门) 북쪽,고루(钟鼓楼)의 남쪽, 스차하이(什刹海) 호수 동쪽에 위치한 오랜 돌다리다. 지안문이 황성의 후문이었기에, 백성들은 이 다리를 후문교 또는 지안문교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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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닝챠오 万宁桥

만녕교(万宁桥)는 베이징 지안문(地安门) 북쪽,고루(钟鼓楼)의 남쪽, 스차하이(什刹海) 호수 동쪽에 위치한 오랜 돌다리다. 지안문이 황성의 후문이었기에, 백성들은 이 다리를 후문교 또는 지안문교라고도 불렀다. 이 오랜 아치석교는 원 세조 지원22년 (1276)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초기에 나무다리였다가 나중에 돌다리로 변경되었다. 만녕교는 베이징의 대운하 세계문화유산 중의 하나에 속한다.

* 수문이자 다리 기능

그 위치가 스차하이의 동쪽이라, 만녕교는 원나라시기에 해자교(海子桥)로도 불렸다.<석진지집일(析津志辑佚)> 중에 만녕교에 대해 "현무지 동측에 징청갑(澄清闸)이 있다. 지원 시기에 건설, 해자 동쪽에 있다. 지원 후에 돌로 재건했다. 만녕으로 이름을 개명, 사람들은 해자교라고도 부른다" 기재되어 있다.

만녕교는 다리와 수문(桥闸)의 두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다. 즉, 다리위로 통행을 하고, 다리 아래는 물을 통제하는 둑 역할도 한다. <금사 金史> 기재에 따르면, 금나라시기에 이곳에 수문이 있었으며, 근처 농지에 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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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닝챠오 万宁桥

만녕교(万宁桥)는 베이징 지안문(地安门) 북쪽,고루(钟鼓楼)의 남쪽, 스차하이(什刹海) 호수 동쪽에 위치한 오랜 돌다리다. 지안문이 황성의 후문이었기에, 백성들은 이 다리를 후문교 또는 지안문교라고도 불렀다. 이 오랜 아치석교는 원 세조 지원22년 (1276)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초기에 나무다리였다가 나중에 돌다리로 변경되었다. 만녕교는 베이징의 대운하 세계문화유산 중의 하나에 속한다.

* 수문이자 다리 기능

그 위치가 스차하이의 동쪽이라, 만녕교는 원나라시기에 해자교(海子桥)로도 불렸다.<석진지집일(析津志辑佚)> 중에 만녕교에 대해 "현무지 동측에 징청갑(澄清闸)이 있다. 지원 시기에 건설, 해자 동쪽에 있다. 지원 후에 돌로 재건했다. 만녕으로 이름을 개명, 사람들은 해자교라고도 부른다" 기재되어 있다.

만녕교는 다리와 수문(桥闸)의 두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다. 즉, 다리위로 통행을 하고, 다리 아래는 물을 통제하는 둑 역할도 한다. <금사 金史> 기재에 따르면, 금나라시기에 이곳에 수문이 있었으며, 근처 농지에 관개를 하는데, 아마도 징청갑의 전신인 듯 하다. <원사 곽부경전 元史·郭守敬传>의 기재 내용에 보면, 원 초기 매년 통주에서 대도성으로 양식을 운반하는 계절이 마침 가을비가 많은 시기라, 식량을 운반하는 나귀들이 수도 없이 죽었다, 도수감장관 곽수경(郭守敬)이 주도하여 통혜하를 뚫었으며, 그 후에 배를 통해 해자까지 운송하게 되었으며, 식량은 해자 서안 신축한 만억고(万亿库) 창고에 보관했다. 수위 조절을 위하여, 곽수경은 해자 동안의 통혜하 기점에 목조구조의 수문을 건조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징청갑(澄清闸)이다.



<하거지 河渠志>에서는 지순원년(1330)에 이르러, 이 목조구조의 수문은 다시 석제로 건설된 만녕교와 함께 일체형으로 건조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2000년, 만녕교 다리 밑의 진흙을 청소하는 과정에서, 다리 서측의 석갑(石闸)이 노출되었으며, 수문 양측에 당시에 수문을 막는데 사용하던 석조(石槽)와 수문판을 올리고 내리는 석질의 도르레 뼈대도 남아 있었다. 고대에는 지금같은 기계장치가 없었기에, 여러 개의 돌판을 쌓아 석조에 끼워 사용하였다. 즉, 고대에는 석조에 끼운 돌판의 갯수로 수위을 조절하였다.

<일하구문고(日下旧闻考)> 에는 해자동징청갑삼(海子东澄清闸三)이라 기재되어 있다. 만녕교 아래에 설치된 것을 징청상갑으로 불렀다. 원대 만녕교의 다리동굴은 현재와 같은 높이로, 강남의 곡식을 싣은 배가 돛을 접고 만녕교 아래로 통과하여, 바로 적수담 수역까지 닿았다. 서호에서 적수담까지, 중간에는 어떤 장애도 없었다. 당시 쿠빌라이가 만녕교를 통과할 때에 새로 개통된 조운길을 통혜하(通惠河)로 명명하였다.

원 혜종시기 집현대학사 허유임의 시에도 만녕교가 표현되어 있다.


* 만녕교의 돌짐승 조각

만녕교는 단공한백옥아치교로 길이는 10여미터, 폭도 10미터에 가까우며, 다리면에는 석판으로 포장했다.

다리의 양측에 한백옥 보호난간이 설치되어 있으며, 연화보병 등 도안이 조각되어 있다.

1950년대에 다리면의 석판을 아스팔트로 바꾸고, 하도를 메우고 집을 지었다. 다리 몸통 하반부는 매장되었고, 다리 양측 난간 일부만 모습을 드러냈다. 1984년, 보호성 건설제한지대로 저정되었다. 2000년에 만녕교에 대한 전체 청소와 복구를 진행하였다. 이때 청소 복구 작업 중에 진수석수(镇水石兽) 몇 개가 출토되었으며, 고증에 따르면 원,명시기의 유적이다.

만녕교의 진수석수는 살무사(蚣蝮) 조각으로, 용의 아홉아들의 하나에 해당하기에, 다리 동굴 중앙이나 궁전 배수구 처에 자주 사용되었다. 출토된 살모사 돌짐승 조각상은 보기힘든 예술품이며, 동시에 하수의 깊이를 재는 측량척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물밑에도 용 구슬 하나와 위를 쳐다보고 있는 살무사가 조각되어 있다. 물이 충분할 때는 이 조각이 수중에 있기에 사람들 눈에 쉽게 보이질 않는다.

다리 동측 남북안에 있는 진수짐승 역시 매우 귀하며, 특히 북안의 용 한마리는 매우 귀중하다. 원나라 시기에 조각된 살무기로 길이는 약 1.8미터, 폭은 약 0.6미터, 전체적으로 흑색을 띠고, 입 아래에 수영이 있으며, 네 다리와 꼬리부에는 비늘이 있으나, 머리에 뿔은 없다. 얼굴부분은 풍화가 심각하여 원래의 모양이 많이 사라졌다. 이 돌짐승상 하나가 원나라 시대의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명나라 시기에 만녕교를 재건축할 때 첨가된 것들이다.

현재에 이르러 만녕교는 다시 새롭게 부각을 받고 있다. 다리 서쪽은 경성 유일의 어용 화신묘가 있는데, 보수를 거쳐 개방되고 있다. 다리 동측은 복구된 옥하북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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