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링 창청 (팔달령 장성) 八达岭长城风景名胜区

세계문화유산이자 국가 5A급 관광지로 국가중점문물보호물(단위)이다. 바다링창청(八达岭长城, 팔달령장성)은 국가중점경관명승지로 전국 문명 여행 풍경 시범구이다

관광지 등급: AAAAA
세계문화유산 명승고적
  • 전화:

    86-10-61118002, 86-10-69121474
  • 최적방문시기:

    봄, 가을
  • 추천유람시간:

    4-6시간
  • 티켓가격:

    성수기:40元
    비수기:35元
    구매채널 : 팔달령 장성 공식 위챗 계정 "八达岭长城" 성수기:40元
    비수기:35元
    구매채널 : 팔달령 장성 공식 위챗 계정 "八达岭长城"
  • 개방시간:

    성수기 4月1日~10月31日
    비수기 11月1日~ 다음 해 3月31日
    개방시간 06:30-16:30

소개

바다링 창청 (팔달령 장성) 八达岭长城风景名胜区

세계문화유산이자 국가 5A급 관광지로 국가중점문물보호물(단위)이다. 바다링 (八达岭长城, 팔달령장성)은 국가중점경관명승지로 “중국 관광 명승지 40선”의 으뜸이라 할 수 있으며, 전국 문명 여행 풍경 시범구이다. 시내로부터 60킬로미터 떨어진 옌칭셴(延庆县, 연경현) 경내에 위치해 있으며, 바다링(八达岭, 팔달령)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바로 도착할 수 있다.



바다링 장성은 만리장성의 정수이자 명나라 시대의 장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명 홍치(弘治) 18년(1505)에 지어진 바다링 관청(关城, 관성)은 가정(嘉靖) 18년(1539)에 바다링관청 동문을 수리했으며, 가정 30년(1551)에는 바다링 관청에서 서북부로 3리 정도 떨어진 곳에 차다오청(岔道城, 차도성)이라 불리는 병영을 지어 병력을 주둔시켜 수비하게 함으로써 바다링의 전초 기지로 삼았다. 만력(万历) 10년(1582)에는 관청 서문을 새로 지으면서 약 80여 년의 시간을 들인 바다링 창청과 관청의 연결 공사가 마무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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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링 창청 (팔달령 장성) 八达岭长城风景名胜区

세계문화유산이자 국가 5A급 관광지로 국가중점문물보호물(단위)이다. 바다링 (八达岭长城, 팔달령장성)은 국가중점경관명승지로 “중국 관광 명승지 40선”의 으뜸이라 할 수 있으며, 전국 문명 여행 풍경 시범구이다. 시내로부터 60킬로미터 떨어진 옌칭셴(延庆县, 연경현) 경내에 위치해 있으며, 바다링(八达岭, 팔달령)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바로 도착할 수 있다.



바다링 장성은 만리장성의 정수이자 명나라 시대의 장성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명 홍치(弘治) 18년(1505)에 지어진 바다링 관청(关城, 관성)은 가정(嘉靖) 18년(1539)에 바다링관청 동문을 수리했으며, 가정 30년(1551)에는 바다링 관청에서 서북부로 3리 정도 떨어진 곳에 차다오청(岔道城, 차도성)이라 불리는 병영을 지어 병력을 주둔시켜 수비하게 함으로써 바다링의 전초 기지로 삼았다. 만력(万历) 10년(1582)에는 관청 서문을 새로 지으면서 약 80여 년의 시간을 들인 바다링 창청과 관청의 연결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각각 흙으로 만든 보루를 통해 서로 마주볼 수 있게 되었으며, 성의 호위가 강화되었고, 봉화 경보 시스템이 구축되는 등 방어 체계의 틀이 잡히게 되었다. 명대 <창안커화(长安客话, 장안객화)>는 “길은 여기서부터 갈리지만 모두가 바다(八达, 팔달)로 통한다. 옛 이름 바다링으로 관산(关山, 관산)의 가장 높은 곳에 있다네” 라고 말하고 있다.


바다링창청은 수도를 호위하는 문이라 할 수 있다. 바다링에서 남쪽 입구까지의 중간에는 “관거우(关沟, 관구)”라 불리는 40미터 길이의 협곡이 있는데 바다링은 관거우(关沟, 관구) 북측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바다링창청에 오르면 눈길 닿는 데까지 넓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으며, 구불구불 길게 이어지는 산맥과 잇따라 겹쳐져 있는 산봉우리가 완리창청(万里长城, 만리장성)을 마치 거대한 한 마리의 용이 아주 아득한 오랜 세월 저 어디선가 날아오르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관거우에 들어서면 서로 마주보며 우뚝 솟아 있는 두 개의 봉우리 사이로 나 있는 길이 하나 보이며, 높은 곳에서 몸을 굽혀 아래를 내려다보면 지세가 매우 험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사람들 사이에서 “바다링(八达岭, 팔달령) 아래에서 쥐융관(居庸关, 거용관)을 보면 마치 물을 가득 채운 동이를 엎지르는[유리한 지세 또는 위치에 처해 있는 의미] 것과 같으며, 또한 우물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쥐융(居庸, 거용)의 험준함은 관청(关城, 관성)에 있지 않고, 바다링에 있다”는 말이 있다.



바다링창청은 전략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역대 전략가들이 절대로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던 곳이다. 청나라 이후의 바다링은 날이 갈수록 황폐해지면서 성벽과 망루의 보존 상태가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지면서 인민정부 수립이후 이와 관련해 대대적으로 손질해야만 했다.

바다링창청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의 증인이다.
최초의 황제였던 진시황(秦始皇)이 동쪽에 면해 있는 제스(碣石, 갈석)에 도착한 후, 바다링에서 다퉁루(大同路, 대동로)를 통해 셴양(咸阳, 함양)으로 돌아간 사건을 비롯해 요나라 초태후(肖太后)의 순행, 원 태조(太祖)의 관성 입성, 명나라 황제의 북벌, 청나라 황제의 친정(왕이 몸소 출정하는 의미) 등의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바다링은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곳이었다.


마오쩌둥(毛泽东, 모택동)은 “만리장성에 가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 라는 한마디 명언을 남겼는데, 이는 완리창청에 오르는 것이 사회주의 혁명의 낭만주의적 색채와 인생의 중대한 의의를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다링창청이 1952년에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이후로 지금까지 이미 1억 3천만 명에 달하는 중국 및 외국 관광객들을 성공적으로 유치했다. 역대 문인 및 묵객(墨客)들은 바다링을 위해 바다링의 풍토와 인정, 조직과 연혁, 전쟁에서 벌어진 전투,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적 이야기 및 그와 관련된 저서, 서예, 그림 등 셀래야 셀 수 없는 수많은 시문을 남겼는데, 이는 중화민족 전통문화의 보고(宝库) 중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으며,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다.


현재 바다링창청은 중요한 명승고적지일 뿐만 아니라 중국의 각 민족 및 전세계 각국 시민들에게 서로 간에 문화 교류와 우호적 왕래를 할 수 있는 다리의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는 중화민족이 전인류에게 선사하는 역사적 보물이다.








바다링창청으로 갈 수 있는 제일 싼 교통노선
지하철 또는 버스를 타고 더성먼(德胜门, 덕승문)에서 내려서 덕승문 성루의 팔달령행 전용버스를 타면 바다링창청에 바로 도착한다.
5분 간격으로 버스가 출발하며 교통카드를 사용하면 40% 할인된다.


베이징시 교외기차S2선을 타면 바다링창청역에 내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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